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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유령전첩지 숭모제향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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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05-19 14:57 조회1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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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유령전첩지  숭모제향 봉행 ☆ ]

                                                                                                                                                      - 문화부 태권 이사 -


 여름을 재촉하는 단비가 내리는 가운데2020년5월19일(화요일) 양주시 백석읍 양곡2리 산28-9 소재 충현사(忠顯祠)에서 양주향교 전교 이 을 규(乙圭)주관으로 오전 11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치뤄진 이날 행사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일반 관람객은 참관하지 않고 유림, 월남참전자회 양주시지회, 지역단체장 등 70여명이 비를 막기위해 쳐진 천막 안에서 참관한 가운데 해유령전첩지(蟹踰嶺戰捷地) 숭모제향(崇慕祭享)을 초헌관에 조학수 양주시부시장, 아헌관은 이기로 선성군 대종회 부회장, 종헌관으로 홍성준 양주시 문화원장, 집례는 양주향교 김재만 장의가 맡아 엄숙하고 경건하게 봉행됐다.
이날 숭모제향에 전주이씨 선성군파 대종회 이치중 회장님을 비롯해 인수 부회장, 상훈 상임전례이사, 상원 청년조직이사, 상봉 대의원, 병산임원, 종친 등 11명이 참반하였다.

숭모제향(崇慕祭享)은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역사적 의의를 기념하고 이곳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부원수 신각(申恪)장군, 유도대장 이양원(李陽元), 함경도 절도사사 이혼(李渾) 삼위(三位)의 호국선열의 충혼을 기리며 민족정기 선양을 위한 교훈으로 승화시키고자 추모행사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전첩지는 양주시 백석읍에서 파주 광탄면으로 가는 지방도 나지막한 고개에 위치해 있으며, 1977년4월 21일 충현사 뒤편에 화강암으로 크기는 높이 10.6m, 둘레 4.8m, 기단 면적 132평방 미터의 기념비를 세웠으며, 1990년 혜유령 전첩비 앞에 삼문(三門)과 곡장(曲牆)등이 갖추어져 있고, 1991년 5월 충현사(忠賢祠)를 짖고, 국난극복의 민족정기를 선양하는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었다.
기념비 밑에는 이양원, 신각, 이혼 공의 넋을 기리는 사당인 "충현사"가 있어 매년 해유령전첩지 숭모제향을 올려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신 분들의 고귀한 정신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해유령전투(게너미고개전투)는 1592년(선조 25)4월 왜적들이 한양을 점령하고 북으로 향하자 당시 부원수 신각은 유도대장 이양원, 함경절도사 이혼과 함께 5월 중순 북상중인 일본군의 선봉부대를 퇴격하였으며, 조선군이 육지전에서 최초로 승리를 거둔 전투지역이다.
신각 장군은 전투 전에 임진강으로 달아났던 도원수 김명원의 모함에 의하여 참형(斬刑)당하셨다.


♡영의정 이양원 할아버님 ♡ 이양원(李陽元) 1526(중종 21) ~1592(선조 25)할아버님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백춘(伯春), 호는 노저(鷺渚)이시며, 평안, 충청, 경기3도 관찰사와 송경유수 등의 관직을 지내셨으며, 선성군(宣城君) 할아버님의 현손이시며, 풍안수(豊安守) 옥석(玉石)할아버지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비홍령(飛鴻令) 난손 (蘭孫)이시고, 아버님은 이원부령(利原副令) 학정(鶴汀)이시며, 어머니는 정양의 따님이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유도대장으로 수도의 수비를 맡았으나 한강 방어의 실패로 양주로 철수 신각과 이혼의 군사와 합세해 해유령에 주둔 일본군과 싸워 승리한 뒤 영의정에 오르셨다.
이때 의주에 피난해 있던 선조께서 요동에 들어가 명나라에 복종하기로 했다는 유언비어를 들으시고, 나라가 망했다는 좌절감에 빠져 식음을 전패한 채 통분하시다가 8일만에 67세로 허무하게 숨을 거두셨다.
공(公)께서는 성품이 충후(忠厚)하고 박학하셨으며, 흑백의 논쟁에 치우치지 않으셨고, 시문에도 매우 능하셨으며, 시호는 문헌(文憲)이시고, 이황(滉)의 문인이셨다.
현재 충남 당진 대호지면 송전리 산 61-23번지 일원에 임금께서 내려주신 사패지지(賜牌之地)에 영의정 이양원 할아버님과 정유재란 때 전사하신 아드님 약산공(藥山公) 이시경(蓍慶)할아버님의 묘와 사당이 있으며, 충신장려문이 있다.

♡ 이양원 할아버님의 일화 ♡
동서당쟁이 자심하던 어느날 왕이 베푼 모임에서 왕이 술을 권하며, "까마귀, 해오라기 모두 검고 힌데 독수리 너는 어이 검지도 히지도 않느냐" 하며 아로가(鴉鷺歌)를 부르고 화답하기를 청하니..
할아버님은 붉다 하여도 내 아니요,푸르다 하여도 내 아니라, 붉고 푸름의 눈부심도 내 고움이 아니거들 님은 어찌하여 날 몰라 보고 물들었다 하시오? 라고 화답했다 한다.
이에 왕은 할아버님의 진심에 편당(偏黨)됨이 없음을 알고 더욱 어질게 여기셨다 한다.
이 일로 할아버님은 스스로 호를 곧 모래톱의 백로라는 뜻이 담긴 노저(鷺渚)라고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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