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춘산도정 이귀(李貴) : 선성군의 9남 3녀 중 장자로 安康郡夫人 安康金氏(상호군 金仲約의 딸)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상세한 행적은 전해지지 않고, 『조선왕조실록』 성종 2년(1471) 3월 24일(정유)조에 보면 공정 대왕의 자손인 춘산수(春山守) 이귀(李貴) 등이 상언(上言)하여 예우가 못 미친 종친 후손들에게 예우를 해 줄 것을 청하는 기사가 보인다. 春山都正 이귀의 춘산도정공파는 선성군파의 장파로 가장 우선하는 파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묘소가 실전되어 1959년 선성군파 『기해보』 중간을 하면서 선성군 묘역 서쪽에 영모단(永慕壇)을 설치하여 11위를 설단 봉사할 때 춘산도정을 설단하여 봉사하고 있다.
춘산도정의 가계는 아들 豊茂令 李繼孫(배위 평양조씨), 손자 豐山副令 李瑊( ? - 1549, 배위 강화최씨)로 이어지고, 춘산도정파의 괄목할 인물이 바로 증손자인 대구부사 이준도(李遵道, 1532 -1584)이다. 이준도(李遵道, 1532-1584)는 자는 택중(擇中)이며 1561년(명종 16)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564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정자가 되었다. 학문이 깊고 문장을 잘 짓는다는 명성이 있었고 무예에도 능하여 문무를 겸비했다는 칭송을 들었다 한다. 형조 좌랑, 함경도 도사, 공조정랑, 예조 정랑을 역임하고, 봉산군수(鳳山郡守), 창성부사가 되었다가 1581년 성균관 전적이 된다. 그리고 대구도호부사로 부임하여 역임하다 53세로 임지에서 순직하였다. 청렴결백하여 뒤에 청백리(淸白吏)에 책록 되었다. 묘비는 1612년(광해군 4)에 건립되었는데, 묘갈명을 윤근수(尹根壽)가 짓고, 김현성(金玄成)이 썼다.
|
◎임원(상임고문, 회장, 부회장, 감사, 총무, 재무, 전례)은 대의원 겸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