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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진박물관(御眞博物館)

 

 

경기전 내에 있는 어진박물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

건축 연면적 1,193.71㎡의 규모이며, 지상 1층은 태조어진과

새로 모사한 6분의 어진(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이

전시된 공간이다. 지하 1층은 전시공간인 역사실과, 가마실,

 

기획전시실이 있으며, 휴게공간과 박물관 업무 및 관리를 위한 사무실,

유물의 보관을 위한 시설인 수장고로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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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박물관 (御眞 博物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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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어진박물관(御眞博物館)

 

 

경기전 내에 있는 어진박물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

건축 연면적 1,193.71㎡의 규모이며, 지상 1층은 태조어진과 새로 모사한

6분의 어진(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이 전시된 공간이다.

 

지하 1층은 전시공간인 역사실과, 가마실,

기획전시실이 있으며, 휴게공간과 박물관 업무 및 관리를 위한 사무실,

유물의 보관을 위한 시설인 수장고로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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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현판(縣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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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태조어진(太祖御眞)

 

 

경기전의 태조어진(보물 제 931호)

1872년(고종 9년) 모사한 어진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태조의 영정이다.

평상시 집무복인 익선관(翼善冠)과 청룡포(靑龍袍) 차림으로

백옥대(白玉帶)와 흑화(黑靴)를 착용한 전신상 어진이다.

 

태조는 키가 크고 몸이 곧 바르며, 귀가 아주 컸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는 고려말 혼란기에 큰 공을 세우고 영웅이 되어

조선을 건국하였다. 전주는 태조의 본향으로 그 선대들이 살았던 곳이다.

 

이를 기념해 1410년(태종 10년) 태조어진을 전주에 봉안하였으며,

1872년 구본이 낡아 박기준, 조중묵, 백은배 등 8인의 화사가 새로 모사해

경기전에 모셨다. 여기 어진실의 태조 어진은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영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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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세종어진(世宗御眞)

 

 

세종어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재의 세종어진은 김기창화백이 추정하여

그린 것으로 1973년 국가 표준영정으로 공인되었다.

어진박물관 소장 세종어진은 김영철화백이 표준영정을 모사한 것이다.

 

세종은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군주이다.

 

성군으로 칭송되는 세종은 유교정치의 기틀을 확립하고,

공법(貢法)을 시행하는 등 각종 제도를 정비하였으며,

문화와 과학기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또한 세종은 4군 6진을 개척하여 국토를 확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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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영조어진(英祖御眞)

 

 

영조어진 진본은 1900년(광무 4년) 조석진,

채용신 등이 그린 반신상으로, 1744년 영조 51세 때 사대부 화가

 조영석 등이 그린 어진을 모사한 것이다.

 

여기 어진실의 영조어진은 1900년의

반신상 어진을 김영철화백이 모사한 것이다. 1900년의

영조어진(보물 제 932호)은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영조는 31세에 왕위에 올라 83세까지 장수한 최장수 왕이며

재위기간이 가장 길었던 왕이다. 영조는 탕평책을 전개하고,

균역법을 시행하였으며, 청계천을 준설 하였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죽인 비정한 아버지이기도 하다.

경기전 뒤에 위치한 조경묘는 영조 47년(1771년)에 창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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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정조어진(政祖御眞)

 

 

정조어진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재의 정조어진은 이길범화백이 추정하여

그린 것으로 1989년 국가 표준영정으로 공인되었다.

 

여기 어진실의 정조어진은 표준영정을 촬영한 사진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로 조선왕조 중흥을 꾀한 군주이다.

 

정조는 규장각을 설치해 학문을 발전시켰으며, 탕평정치를 전개해

붕당의 폐단을 해소하고, 왕권을 강화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려는

큰 포부를 갖고 화성을 축조하고 천도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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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철종어진(哲宗御眞)

 

 

철종어진은 진본은 1861년(철종 2년) 이한철. 조중묵 등이

그린 것이다. 융복(군복) 차림으로,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보기 드문

손의 형태를 볼 수 있는 어진이며, 용모에 순수한 인품이 반영되어 있다.

 

1954년 부산 보관창고에 불이나 오른쪽 화폭의 3분의1쯤 소실되었다.

여기 어진실의 철종어진(보물 1492호)은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철종은 사도세자의 증손자로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헌종이 후사가 없이 승하하자 순조의 비 순원왕후에 의해 후계자로

지목되어 왕위에 올랐다. 철종은 "강화도령"으로 불리며 안동김씨의

세도정치 속에서 정치를 바로 잡지 못한 채 병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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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고종어진(高宗御眞)

 

 

2001년 권오창화백이 사진을 보고 모사한 고종어진이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올랐음으로,

어진은 조선 왕들과 달리 황제복인 황룡포 차림이다.

 

신정왕후(조대비)는 안동김씨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흥선대원군과 손을 잡고 그 둘째 아들로 왕위를 잇게 하였다. 그가 고종황제이다.

고종은 1897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를 칭했으며,

 

연호를 광무라 하였다. 고종은 일본에 의해 외교권이 박탈당하고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한 것이 문제가 되어 폐위되었다.

 

1919년 승하 하였으며, 고종 독살설은 3.1운동의 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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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순종어진(順宗御眞)

 

 

2001년 권오창화백이 사진을 보고 모사한 순종 어진이다.

 

면류관을 쓰고 십이장복을 입은 대례복 차림이다.

장복(곤복)은 의례를 행할 때 착용하는 것으로 황제는 십이장복, 왕은 구장복이다.

십이장복이란 명칭은 옷에 들어가는 문양의 수가 12가지라는 뜻이다.

 

순종황제는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둘째 아들로

고종의 뒤를 이어 1907년 황제로 즉위 하였다.

 

1910년 조선왕조가 몰락하면서 일제에 의해 "이왕(李王)"으로

강등되는 등 수모를 겪다가 1926년 승하 하였다.

 

순종 장례식날 6월 10일을 기해 독립을 외치는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본 글은 "자연과 함께"님의 글을 옮겼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