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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애.경사 및 종현 동정을 알리는 게시판입니다.

2016 선종회 명산종중 의정부선영 방문 및 추모


선성군파대종회 전례봉사자 모임 "선종회" 는 년 1회 선대묘역을 찾아 역사의 고리로 묶여있는 우리 선조 어르신들의 공적을 찾아 추모하고 지혜를 배우는 시간을 갖는 일환으로 올 행사는 선성군 할아버님의 셋째 아드님인 명선대부(明善大夫) 명산도정(明山都正) 금정(金丁),묘역을 방문하고 추모하였습니다.


본 선영은 의정부 수락산 자락 동북쪽 "고산동 산 116-1"번지 약 3만여평의 양지바른 터에 "명산도정"을 포함 총 11위를 모신 곳으로 현재 의정부시 향토유적 11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수락산 자락의 수려한 경관을 따라 동북쪽을 향해 3구역으로 나눠진 묘역은 선조에 대한 명산종중의 숭조하는 모습을 보는 듯 깨끗하게 정돈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방문엔 대종회 응찬회장을 포함 모두 32명의 선종회 회원 및 종친들이 방문하여 "명산도정"를 필두로  하양군 등 총 11위 묘소에 성묘하고 추모하는 순서로 진행하였습니다.


아래 사진은 의정부 선영 동명교관 이원주 묘역 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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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도정 묘소 앞 기년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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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자양동 선덕빌딩 앞에서 대절버스를 타고 의정부선영으로 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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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이 있는 고산동 일대 미군기지 종사자들을 위한 타운 상가를 지나며 멀리 수락산 정상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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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입구에서 윤중 상임고문님의 간단한 묘역 설명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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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수락산 자락의 수려한 경관을 따라 동북쪽을 향해 조성된 3구역중 명산도정 묘소가 있는 묘역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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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도정 앞에서 윤중고문님의 묘역설명이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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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성묘는 비교적 조성 당시의 원형이 잘 보존된 선성군 3남 명산도정(明山都正휘는 금정(金丁)의 묘소를 찾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은 창선대부(彰善大夫) 명산부수(明山副守)로 제수되었다가 후에 명산대부. 명산도정에 추중되었습니다.

배위는 후에 판서(判書)에 증직된 부사 경무(景武)의 딸 밀양 박씨로 남편의 직계에 따라 신부인(愼夫人)에 책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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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군 4세 이산의 묘)

두 번째 방문지는 선성군 4세 파평부령 이산(坡平副令 李瓚)의 묘를 찾았습니다.

하양군 옥현의 큰 아들로 왕족에게 부여하는 선원직의 상례를 따라 창선대부(彰善大夫) 파평부령(坡平副令)을 배수(拜受)하였습니다.

배위는 신부인(愼夫人) 능성 구씨로 명문인 증조가 지중추부사를 역임하고 호양공(胡襄公)의 시호를 받은 구치홍(具致洪)입니다.

묘는 부부 합장묘가 아닌 전방에 이찬의 묘를, 후방에 배위 구씨의 묘로 배치된 것이 특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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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시정 극검의 하트모양 묘)

세 번째는 5세 사복지정(司僕寺正) 극검(克儉)의 무덤을 찾아 윤중고문의 설명을 듣고 목례로 예를 표했습니다.

이극검은 파천군 이주(李珠)”의 아들로 태어나 후에 伯父인 파평부령 이찬(李瓚)”의 양자로 입적하였습니다.

종친부 선원(璿源) 소목의 관직 진출 제한에서 풀린 첫 세대로 과거에 응시하여 진사가 되었고, 사후 사복시정에 증직되었습니다..

배위는 兵使를 지낸 여문망(呂文望)의 딸 함양 여씨(呂氏)로 숙인(淑人)의 직첩을 받았다. 특이하게 묘의 모양이 하트형으로 조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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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군 옥형과 배위 묘)

이어 묘역 하단에 3기의 분묘로 조성된 하양군 이옥형(河陽君 李玉荊)의 묘소를 찾아 성묘했습니다.

명산도정 금정의 아들로 창선대부(彰善大夫) 하양령(河陽令)에 책봉되었다 사거 후 승헌대부(承憲大夫) 하양군(河陽君)에 증직되었습니다.

초배위는 부안 김씨이며, 후배위 파평 윤씨는 찬성(贊成)을 지낸 윤형(尹炯)의 증손녀, 직장(直長)을 지내고 판서에 추증된 윤회의 손녀, 시직(侍直)을 지내고 찬성(贊成)에 증직된 윤구몽의 따님입니다. 縣夫人의 직첩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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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성군 이염의 묘)

다음은 경관이 수려한 숲길을 따라 서쪽 묘역으로 이동 선성군 4세 파성군 이염(波城君 李琰)의 묘를 찾았습니다.

하양군 이염의 아들로 선원직인 령()을 배수하였으나 후에 승헌대부(承憲大夫) 파성군에 추중되었습니다.

배위는 사의(司議) 김양범의 딸 계림 김씨로 현부인(縣夫人)의 직첩을 받았습니다. 본 묘는 특이하게 하트묘양으로 조성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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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 본 하트모양으로 조성된 이염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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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천군 이주의 묘)

다음은 파천군(波川君) 이주(李珠)의 묘로 이동했다. 하양군 옥형의 아들로 종친계인 창선대부(彰善大夫)가 되었고 사후 가덕대부(嘉德大夫) 파천군에 추봉되었습니다.

배위는 판서를 지낸 아성군(牙城君) 어세공(魚世恭)의 따님 함종(咸從) 어씨로 郡夫人의 직첩을 받았습니다.

부부묘가 위 아래로 조성됐고, 전면에 향로석, 상석, 혼유석이 위치하고, 묘 앞에 비갈과 동자석이 배치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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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정 이극인의 묘)

이어 파천군 묘 뒤쪽에 위치한 5세손 영의정 李克仁의 묘소로 이동 성묘를 했습니다.

파천군 이주의 아들로 자는 덕원(德元)입니다. 문과에 등과하여 전사가 되고 벼슬에 올라 의금부도사. 성현 찰방. 귀후서 별제. 의금부 낭관. 풍저창 주부. 정읍현감. 사헌부 감찰. 청주판관. 한성판관을 거쳐 간성군수를 역임했습니다. 아들 홍주가 영의정이 되자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습니다. 당대의 명필 아들 홍주의 글씨로 묘갈에 비문이 쓰여 있습니다.

배위는 이조참의 유환(兪煥)의 따님 창원 유씨로 정경부인(貞敬夫人)에 추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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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 영의정 이홍주의 묘)

다음은 6세 영의정 이홍주(弘冑)의 묘로 옮겨 설명을 듣고 성묘를 했습니다.

영의정 홍주는 간성군수 이극인의 아들로 자는 백윤(伯胤)이며 호는 이천(梨川)입니다. 문과 진사시와 별시에 합격하여 의금부도사, 고산도 찰방, 예조와 병조의 좌랑 시강원 사서, 지제교, 이조좌랑, 기주관 좌주, 성균관 사예 겸 편수관(編修官)을 재냈다. 평양서윤(平壤庶尹), 의주부윤(義州府尹), 安東府使를 지낸 후 이어 동부승지(同副承旨)가 되고 중추부와 형조참의를 거쳐 명나라에 사행(使行)을 다녀온 후 동지중추 겸 副摠管, 병조참판(兵曹參判) 겸 동지의금부사, 함경감사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정묘호란(丁卯胡亂) 이후 대사헌(大司憲), 예조판서(禮曹判書)를 역임한 후 개성유수(開城留守)가 되고 숭정대부(崇政大夫)로 승계 하였고. 이후 좌참찬(左參贊)에 제수되었다가 다시 병조판서로 옮기고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승차되고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에 이어 다시 예조판서가 되니 예조판서만 3회에 걸쳐 역임하였고. 이후 병자호란을 수습한 공을 인정하여 선조때 영의정(領議政)에 제수되었습니다.

()는 능성(綾城) 구씨(具氏). 부사를 재내고 이조참판에 증직된 구효연(具孝淵)의 따님. 이후 정경부인에 추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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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주 옛 묘소의 석물과 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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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군 6세 동몽교관(童蒙敎官이원주(李元冑)묘)

선성군 6세 동몽교관(童蒙敎官) 이원주(李元冑)묘로 발길을 옮겨 성묘했습니다.

파평부령 이찬의 아들로 자는 대윤(大胤), 호가 문월당(問月堂)이다. 문재(文才)에 뛰어나 동몽교관을 지내고 문집을 남겼으며, 3형제가 함께 병자존주록(丙子尊周錄)”에 기록되었습니다.

초배위 전주 최씨는 최원(崔源)의 딸로 공인(恭人) 첩지를 받았다. 후배위 파평 윤씨는 첨사(僉使) 윤희상(尹熙祥)의 따님입니다.

묘는 전방에 이원주. 후방에 배위 두 분이 나란히 종렬로 조성돼 있는 특이한 형태의 무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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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군수 이극온의 설단)

이어 선성군 5세 이극온(克溫)의 설단(設壇)에 참배하였습니다.

극온은 파평부령(坡平副令) 이찬의 아들로 군수(郡守)를 지냈습니다.

배위는 숙부인(淑夫人)의 직첩을 받은 김해 김씨입니다.

당초 묘역 안에 묘소가 조성되었으나 이후 실전(失傳)되어 1970년 그림과 같이 단()을 설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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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 4형제 순절공 묘)

마지막으로 선성군 54형제 순절공(殉節公) 극심(克諶). 극성(克誠). 극함(). 극겸(克謙) 묘소를 찾아 성묘하고 순절비를 배경으로 방문기념 단체사진도 촬영했습니다.

이들 4형제는 파성군 이염의 아들들로 임진왜란 당시 부친의 묘소에서 함께 시묘(侍墓) 중에 묘소에 접근하는 왜군과 싸우다 4형제 모두 장렬히 순국하였습니다.. 4형제 순절 당시 시신을 수습하여 가묘를 만들었던 산지기 홍희의 설단이 묘소 옆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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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형제 순절공의 시신을 수습한 산지기 홍희의 설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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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선영방문을 마치고 인근 구이집으로 옮겨 점심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