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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성군 4세 일람표

 

선성군(宣城君) 약력(略歷)

  • 생몰연대 : 1392. 12.10(양) ~ 1460.07.07(음)

    선성군은 조선조(朝鮮朝) 제2대 정종대왕(定宗大王)과 고려 찬성사 지윤(池奫)의 따님 성빈충주지씨(誠嬪忠州池氏) 사이에 제2남(정종 15왕자 중 제4남)으로 태어나셨고, 휘는 무생(茂生), 시호는 양정(良靖)이다.


    군(君)은 정종대왕(定宗大王)께서 양위(讓位) 후 인덕궁(仁德宮)에 계실 때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며 효성을 다하고 권세를 멀리하였다.
의친(懿親)의 규례에 따라 (세종 7년 1425년)에 중직대부(中直大夫) 정윤(正尹)에 봉해 졌으나 선성군은 스스로를 낮추어 보신을 취하셨다.

 

    1427년(세종9년)에 학문을 게을리 한다는 이유로 배천으로 유배되었다. 후 날 그 본의를 알고 유배에서 풀려나 종친의 예에 의거하여 세종12년에 종학(宗學)에 나가셨다.

    세종 14년(1432) 원윤(元尹)의 작호를 받고, 단종2년(1454) 3월에 중의대부 선성군(宣城君)에 봉해 졌으며 그해 5월에 종친(宗親), 의빈(儀賓), 문무백관(文武百官)과 함께 경회루(慶會樓)에서 진풍연(進豊宴)을 열기도 하였다.

 

(비각)

    군(君)은 태조(太祖)원년(元年)(1392년) 12월 10일 출생하여 시국의 특이한 상황에서 더욱 몸을 낮추고 한가롭게 사시다 1460년(세조6) 7월7일 69세의 일기로 여생을 마치셨다,

    1982년 고종 9년 3월에 “증상보국 숭록대부 영종정경 행중의대부”(贈上報國 崇祿大夫 領宗正卿 行中義大夫)로 추증(追贈)되시고 시호를 양정(良靖)이라 하였다.

    남한산성 동북쪽 40㎞의 거리에 덕봉(현 덕풍)이 있으며 덕봉의 남쪽 남향의 등성에 선성군 양정공(良靖公)의 유택이 있다.

 

(선성군 비)

   군의 배위(配位)와 자녀로 참의(參議) 위 종성(宗誠)의 따님으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선생의 손녀인 오천군부인(烏川郡夫人) 영일정씨(迎日鄭氏) 사이에 1녀, 상호군(上護軍) 휘 중약(仲約)의 따님인 안강군부인(安康郡夫人) 안강김씨(安康金氏) 사이에 1남, 평산백(平山伯) 휘 후저(後抵)의 후손 평산군부인(平山郡夫人) 평산한씨(平山韓氏) 사이에 8남2녀을 두셨다.

자녀는 명선대부(明善大夫) 춘산도정(春山都正) 귀(貴), 추천부수(楸川副守) 숭덕(崇德), 명선대부(明善大夫) 명산도정(明山都正) 금정(金丁), 창선대부(彰善大夫) 풍안부수(豊安副守) 옥석(玉石), 광징대부(廣徵大夫) 설성부정(雪城副正) 철정(鐵丁), 석보부수(石保副守) 은정(銀丁),승헌대부(承憲大夫) 병산군(屛山君) 말정(末丁), 명선대부(明善大夫) 도성수(陶城守) 천정(千丁), 덕양부수(德陽副守) 귀정(貴丁) 등 9남과 3녀를 두셨다.


 

선성군(宣城君) 4世일람(一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