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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代 人物(선대인물)

 준도(遵道)   1532∼1584


자는 택중(擇中). 선성군의 4대손이며, 봉사손이다. 춘산도정(春山都正)의 증손이며 풍산부령(豊山副令)의 아들이다. 통정대부이다. 

 1561년(명종 16) 생원 · 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564년(명종 19) 별시 문과 병과에 급제하였다. 
 1568년(선조 1) 조모 승중상(承重喪)을 치른 후 구례에 따라 박사가 되고 1572년(선조 5) 평안평사 · 형조좌랑 · 함경도사를 거쳤다. 1576년(선조 9) 공조 · 예조정랑을 역임하고 봉산군수를 거쳐 1578년(선조 11) 창성부사(昌城府使)로 승진하였다. 그곳에서 정치를 잘 했으므로 임지에서 1년을 더 근무하다가 1581년(선조 14) 교체되어 성균관 전적으로 있었다. 이 후 대구도호부사로 임명되어 근무하다가 1584년(선조 17) 53세로 생을 마쳤다. 

 선성군 묘역은 상후면에 묘가 있고 묘갈명은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 : 1537∼1616)가 지었으며 글씨는 남창(南窓) 김현성(金玄成 : 1542∼1621)이 썼다.

 공은 문장이 뛰어났고 율곡(栗谷) 이이(李珥)와 교우가 깊었으며 과거문제를 함께 주관했다. 어느날 과거시험장에서 두 분이 같이 있을 때 천도책(天道策)에 대한 문제가 출제되었다. 응시생들이 시험관에게 제목의 뜻을 묻자 시험관이 말하기를 “이율곡과 리준도가 지금 시험장에 있으니 그들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응시생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와 물어보느라고 대단히 혼잡하므로 공이 말하기를 “차라리 글로 한 장을 써서 보여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니 율곡이 그것이 좋겠다고 말하였다. 마침내 두 분이 각기 첫머리와 말미를 나누어 써서 글 한 장을 만들어 그들에게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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